1. 아직도 이 땅에 살려면 '저 지하 땅끝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온몸으로 투쟁'해야 하고, 메달 땄다고 퍼레이드도 해야하고, 사노련이라는 사회주의 조직에 국가보안법 적용도 받아야 하고. 막걸리 마시다 대통령 욕하면 잡혀가고, 권력 잡으려고 사람 죽이고, 학교다니다 군대 끌려가서 소문없이 죽고, 고문받다 죽고, 지금 당장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만, 계속 옛날 이야기들이 재현되는 걸 보면, 세상은 아직 그대로인 거다. 명랑 사회는 아직도 마음 속에 있나보다.
글을 재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세상이 그대로이니 어쩔 수 없이, 지난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를 시도나마 했던 그 때 그 시절, 딴 로그에 썼던 포스트를 꺼낸다. (세상에나, 국보법 폐지를 시도나마 했던 것이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이 될 줄은 몰랐다.)
2.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여수사태의 종결 직후, 1달여 만에 초스피드로 만들어 졌다. 심의중이었던 11월 16일에 이미 국가보안법 폐기동의안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부결되었다.
당시 찬성론자들은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반민주분자는 역적으로서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다,"
"우리를 (이)법을 세밀히 하여서 물샐틈없이 하여야 한다,'
"공산도배의 발호에 맞서 국가를 보위하지 못하면후대를 볼 낯이 없을 것."
"지역민중들의 강력한 여론은 강력한 입법을 통하여 포악한 도배들을 처리해 달라는 것이 주류"
"피를 한폭기 뽑자면 나락을 다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피를 안 뽑을수 있겠는가"(박순석)
"우리는 이 민주정부를 지지하며 육성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만일 이 민주정부를 파괴하고 말살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취해서라도 그러한 폭력을 배제하는 데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이주형)
당시 국회의 반대론자들은
"이 법률을 발표하고 나면 안 걸릴 사람이 없을 것이다"(조헌영)
"좌익을 막으려면 좌익에 지지않는 민주주의적인 입법을 해가지고 민족정기를 살려야 한다. 이 법률이야 말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위한 법률이나... 일제의 치안 유지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노일환)
"민주주의 헌법은 인민의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다수 일어나는 반란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만들었던 헌법정신은 몰각하고 인민을 극도로 속박하는 법률을 우리 자신이 만드는 법이 어디 있는가"(신성균)
"국가보안법은 포악무도한 일제침략주의의 흉검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유지법과 똑같은 비민주적 제국주의의 잔재이다. 우리가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하는 이 마당에 ... 제국주의 잔재폐물은 용납할 수 없다."(김옥주)
(이상은 제 1회 국회 속기록, 105호, 107호, 108호)
3. 놀랍게도, 아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놀라울 것도 아닌데 환갑이 다되어가도록 이 놈의 법을 둘러싼 논쟁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국가보위법을 주장한 측과 민주주의를 위해 반 민주 악법은 용납할 수 없다는 측의 대립.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나 근거는 '민주주의 수호'와 '인민보호'였다. 우스개 소리로 80년의 학살자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지만, 지난 60년간 이 법이 보여온 모습은 하등 '민주주의 수호'와 '인민보호'와는 관련이 없었다.
60년이 흘러 여전히 민주주의는 표류 중이고, 이제는 그 옛날 국회의원들의 사회 인식조차 못가진 셈이 되어 버렸다.
p.s 첫 문장에서 링크 건 프레시안 기사중, "이 활동가는 오세철 교수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건 연세대 총장을 포함해 연세대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경찰이 성과를 내려면 왕년에 오 교수만큼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됐던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의 집도 한 번 압수 수색해보라"고 꼬집었다."고 나오는데, 그 측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공편한 책을 한 권 갖고 있는데, 제목은 후기자본주의와 사회운동의 전망-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글을 재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세상이 그대로이니 어쩔 수 없이, 지난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를 시도나마 했던 그 때 그 시절, 딴 로그에 썼던 포스트를 꺼낸다. (세상에나, 국보법 폐지를 시도나마 했던 것이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이 될 줄은 몰랐다.)
2.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여수사태의 종결 직후, 1달여 만에 초스피드로 만들어 졌다. 심의중이었던 11월 16일에 이미 국가보안법 폐기동의안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부결되었다.
당시 찬성론자들은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반민주분자는 역적으로서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다,"
"우리를 (이)법을 세밀히 하여서 물샐틈없이 하여야 한다,'
"공산도배의 발호에 맞서 국가를 보위하지 못하면후대를 볼 낯이 없을 것."
"지역민중들의 강력한 여론은 강력한 입법을 통하여 포악한 도배들을 처리해 달라는 것이 주류"
"피를 한폭기 뽑자면 나락을 다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피를 안 뽑을수 있겠는가"(박순석)
"우리는 이 민주정부를 지지하며 육성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만일 이 민주정부를 파괴하고 말살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취해서라도 그러한 폭력을 배제하는 데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이주형)
당시 국회의 반대론자들은
"이 법률을 발표하고 나면 안 걸릴 사람이 없을 것이다"(조헌영)
"좌익을 막으려면 좌익에 지지않는 민주주의적인 입법을 해가지고 민족정기를 살려야 한다. 이 법률이야 말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위한 법률이나... 일제의 치안 유지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노일환)
"민주주의 헌법은 인민의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다수 일어나는 반란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만들었던 헌법정신은 몰각하고 인민을 극도로 속박하는 법률을 우리 자신이 만드는 법이 어디 있는가"(신성균)
"국가보안법은 포악무도한 일제침략주의의 흉검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유지법과 똑같은 비민주적 제국주의의 잔재이다. 우리가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하는 이 마당에 ... 제국주의 잔재폐물은 용납할 수 없다."(김옥주)
(이상은 제 1회 국회 속기록, 105호, 107호, 108호)
3. 놀랍게도, 아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놀라울 것도 아닌데 환갑이 다되어가도록 이 놈의 법을 둘러싼 논쟁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국가보위법을 주장한 측과 민주주의를 위해 반 민주 악법은 용납할 수 없다는 측의 대립.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나 근거는 '민주주의 수호'와 '인민보호'였다. 우스개 소리로 80년의 학살자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지만, 지난 60년간 이 법이 보여온 모습은 하등 '민주주의 수호'와 '인민보호'와는 관련이 없었다.
60년이 흘러 여전히 민주주의는 표류 중이고, 이제는 그 옛날 국회의원들의 사회 인식조차 못가진 셈이 되어 버렸다.
p.s 첫 문장에서 링크 건 프레시안 기사중, "이 활동가는 오세철 교수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건 연세대 총장을 포함해 연세대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경찰이 성과를 내려면 왕년에 오 교수만큼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됐던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의 집도 한 번 압수 수색해보라"고 꼬집었다."고 나오는데, 그 측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공편한 책을 한 권 갖고 있는데, 제목은 후기자본주의와 사회운동의 전망-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